임시 하숙방을 구하다 마주친 낯선 선결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열흘 정도 서울 본교에 머물러야 한다. 실험기기 교육이 평일 오전에 몰려 있어 통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호텔은 예산이 넘치고 기숙사는 대기자가 너무 길어 매번 단기 하숙방을 구해 왔다. 이번에도 익숙한 대학생 자취방 커뮤니티를 뒤지다 보니 깔끔해 보이는 원룸이 눈에 띄었다. 합정 역세권에 보증금 면제 조건으로 하루 2만 원대였다.

게시글 사진은 햇살이 잘 드는 하얀 벽과 원목 책상, 생활감이 느껴지는 화분이 함께 있었다. 작성자는 졸업 후 지방 연구소 발령이 나서 방을 비워 두었다고 적어 두었다. 예약 문의를 텔레그램으로 달라는 문구가 있어 링크를 따라갔다.

텔레그램 프로필에는 공간을 빌려 주는 일이 처음이라 절차가 서툴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자 상대가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보내 왔다. 사투리가 섞인 말투가 자연스러워서 의심은 크게 들지 않았다. 그는 기본 정보를 요청하며 방 상태가 깨끗하다는 증거로 실시간 사진을 곧바로 올려 주었다. 침대 모서리에 오늘 날짜가 적힌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입금 방식은 선결제였다. 하숙 기간이 길지 않아 계약서를 정식으로 쓰기보다 전체 금액을 계좌로 먼저 받고 열쇠를 퀵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잘 생각해 보니 열쇠를 우편으로 받아 본 적은 있지만 퀵 발송은 처음이었다. 퀵 기사가 문앞에서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긴다고 하니 그럴싸해 보였다. 다만 너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사흘 전에 있었던 발표 준비 때문에 책상 위에 아직도 펼쳐져 있던 먹튀위크 사이트가 문득 떠올랐다. 여기서 이상한 닉네임이나 계좌 번호를 검색해 보면 실패담이 곧잘 나왔다. 상대가 준 계좌 끝 네 자리를 입력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같은 숫자가 포함된 하숙 사기 사례가 두 건이나 보였다. 내용은 엇비슷했다. 퀵 택배 사진으로 안심시킨 뒤 송금 직후 잠수를 탄 패턴이었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나는 상대에게 계좌 이름이 본인 실명인지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몇 분 뒤 돌아온 메시지는 개인 명의가 아니라 부모님 명의라는 설명이었다. 이어서 빠른 결정이 어렵다면 다른 대기자에게 넘기겠다는 말이 붙었다. 시간 압박이 추가되자 마음속 경계 게이지가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입금을 취소하겠다고 답한 뒤 모든 대화를 캡처해 둔 채 방을 나왔다. 계정을 다시 열어 보니 이미 온라인 상태가 꺼져 있었다. 같은 커뮤니티 게시판에 방금 본 게시글 주소와 먹튀위크 검색 화면을 첨부해 주의 글을 올렸다. 몇 시간 뒤 관리자가 해당 글을 삭제한 뒤 피싱 경고 배너를 띄웠다는 알림을 받았다.

결국 숙소는 학교 앞 오래된 고시원으로 정했다. 창문이 작고 복도가 좁지만 관리인이 직접 열쇠를 건네며 신분증 사본까지 주고받는 절차가 있어 마음이 편했다. 방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막았을까 생각하며 휴대폰을 껐다.

하숙비 몇만 원 아끼겠다고 서두르다간 통장뿐 아니라 열흘치 공부 계획도 통째로 날아갈 뻔했다. 앞으로는 사진 대신 등기부등본을 먼저 달라고 요청하고 선결제 요구가 나오면 속도부터 늦출 생각이다. 그리고 먹튀위크 먹튀검증 통해 매물 정보를 읽기 전 단계로 습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낯선 선결제는 한밤의 번뜩이는 할인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으로 충분히 배웠다.